“슬픔모다 더 슬픈 이야기”(2009, 원태연)는 언뜻 보기에는 신파조 눈물샘을 자극하는 로맨스같지만, 잘 들여다 보면 어처구니 없는 사기극입니다. 

발랄하고 당돌한 여주인공 이보영 (크림 역)은 한 남자(치과 의사)의 마음을 순식간에 빼앗아 버리고 결혼까지 갑니다. 이유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오랜 친구 권상우(K 역)의 소원을 들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보영에게는 두 개의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는 치과의사와 사기 결혼을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상우가 시한부인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연기를 한 것입니다. 

비록 스토리는 뻔해 보이지만, 그 재미의 중심은 이보영이 어떻게 권상우도 속이고 이범수도 속이는지 그 테크닉에 있습니다.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 척하고, 이범수와 결혼식을 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권상우와 결혼식을 하는 정교한 각본. 본질적으로는 사기인데, 그 사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성인 특유의 “사기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보영의 행동이 그렇듯, 수성인은 정교한 각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연기력이 있습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키스를 하고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는 뻔뻔스러움. 그래서 수성인은 믿기 어렵고 뒤통수 치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영화 결말부의 결혼식은 그냥 평범한 결혼식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합동 결혼식이 돼 버립니다. 같은 행동인데 두가지 의미를 띄는 “양의성”을 알면서 관객은 절묘한 느낌에 빠집니다. 그리고 모든 게 사기였음을 알게 됩니다. 즉, 관객 조차도 영화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 웃음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전은 뻔한 스토리에 식상하기 쉬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든 장치입니다. 영화 리뷰 사이트에서 보면 이상할 정도로 많은 감동의 리뷰가 보입니다. 진부한 로맨스임에도 불구하고 눈높이가 높아진 2000년대 한국 관객, 특히 영화를 수백편씩 다운받아보는 영화 중독에 빠진 관객의 갈채를 받은 이유는 그 막판의 반전의 힘이 아닐까? 

그리고 반전의 중심에는 이보영의 사기 행각과 함께, 끝까지 시치미 떼고 모른체 했다가, 결국 실토하는 카메라 렌즈 자체의 사기 행각도 연루돼 있습니다. 감독도 관객을 속인 것이다. 사기 결혼을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졸지에 홀아비가 된 김범수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러면서도 이보영을 미워하지 못하는 그의 신세는 관객의 입장과 똑같습니다. 완벽하게 속았기 때문입니다.